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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드] 최고의 이혼 명장면 - 6부 엔딩씬 "펑키하고 몽키한 패밀리가 될 수 없어"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20퍼센트의 이성의 끈을 쥐고 80퍼센트의 감정덩어리에 눌려 살고 있는 나는,
본능적으로 나와 비슷한 드라마들을 좋아한다.
이성과 논리로 뇌를 풀가동 시키는 미스터리나 스릴러 드라마보다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누군가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풀어놓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영화/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시작이 현명하던 멍청하던 나중에는 처음의 자신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주인공들은 극의 전개에 따라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다.
예를 들면,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 "너를 힘들게 하는 그 남자는 버려라", "권력 앞에서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한다","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용기를 내야한다" 등
그들의 선택은 여러 고난들을 맞이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 선택이 옳은 경우가 많다.
특히 권선징악이 뚜렷한 드라마를 볼 때면 인생 사는 법은 이보다 더 단순할 수 없어 보인다.
착하게 살면 되니까.
그러나, 때때로 어쩌면 자주 나는 드라마 속 인물들 보다도 현실 감각이 약하고, 내가 하는 선택들에 확신이 없다.
그들이 흔들림 없는 선택을 할 때, 나는 그들의 선택에 대리만족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정작 나 자신의 현실로 돌아오면 같은 고민을 반복한다.
그래서 때때로 어쩌면 자주 나처럼 엉망진창으로 꼬인 상황에서 허덕거리는 누군가를 볼 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최고의 이혼>은 명확히 후자이다.
흔들리는 캐릭터들에 동질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그들이 상황이 꼬여갈 때 더 흥분이 된다.
(그래서 어떻게 될거냐 너희들!! )
내 안에 (괴롭힘에 희열을 느낀다는) 사디스트 기질을 발견하는 기분이다.
<최고의 이혼>의 매력은 엉망진창이 된 관계가 더이상은 풀기 힘들어 가위로 잘라버려야하나 싶을 때, 하나씩 그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며 진짜 나와 진짜 너의 모습을 발견하는 데에 있다.
(6부 엔딩씬. 전후 상황설명)
미츠오(에이타)와 유카(오노마치코)는 이혼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한 집에서 동거한다. 이들의 이웃에 미츠오의 첫사랑 아카리(마키 요코)가 이사를 온다.
아카리는 막 결혼한 부부이지만, 아카리의 남편 료(아야노 고)는 혼인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는 문어다리 바람둥이다.
아카리는 료의 바람을 알면서도 모른 척 부인해왔지만, 정작 료가 자신의 바람을 시인하고 반성하자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해서 료를 내쫓는다.
미츠오는 첫사랑 아카리의 남편 료가 바람을 핀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길에서 집에서 쫓겨난 료와 료에게 화가 난 아카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중재를 위해서). 미츠오의 전부인 유카 또한 이들의 관계(남편의 첫사랑, 남편의 첫사랑의 바람둥이 남편)를 다 안다. ..... 얼떨결에 한 식탁에 마주하게 된 네 사람.
<최고의 이혼>의 명장면은 늘 테이블에서 탄생한다.
이 씬에 부재를 붙이자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쿤데라의 소설 제목을 따오고 싶다.
가까이서 보면 이 상황은 참을 수 없이 무겁다.
엉망진창이고, 질척거리기도 하고, 아주 찐덕한 늪이다.
말할 수 없는 비참함, 분노, 공감, 미안함, 당황스러움 등 각기 다른 서로의 감정들이 한 공간을 채운다.
그런데 이 장면을 멀리서 보면 보면 또 아이러니한 가벼움이 있다.
서로가 주고 받는 럭비공 같은 대사의 향연이 유쾌하기까지 하다
인물들이 보이는 자신의 밑바닥에서 진심이 드러나고, 진짜 본연의 모습 서로가 알게 된다.
<최고의 이혼>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처럼,
"드러내지 않고 묻어두는 것이 가장 나쁘다"는 것.
행복하지 않으면서 행복한 척 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
행복하지 않으면서 행복한 척 하는 아카리의 분노가 폭발하며 카타르시스가 나온다.
또하나 이 씬의 백미는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미츠오가 적극적인 중재자가 된다는 아이러니함이다.
모두 다 행복 따위 필요없어. 각자 살아. (평소에 미츠오의 태도와 비슷하다.)
라는 결론을 내릴 때,
미츠오는 말한다.
"그럼 여기 있는 모든 사람 행복할 수 없어요. 그럼.. 그럼.. 펑키하고 몽키한 패밀리가 될 수 없다고!"
이 캐릭터라면 이럴거야. 그래야 개연성이 있지.
라는 내 얍삽한 예측을 빗겨나가는 순간!
이들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생생함과 진실됨이 내 도파민을 자극시켰고 나는 환호했다.
복잡함, 그것도 인간을 설명하는 큰 개연성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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