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ity 탐구생활
[영화+책] 어느 가족과 고레에다히로카즈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오키님
2018. 8. 7. 02:16
<어느 가족>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18
* 400자 쓰기의 목적은 '본 것'과 '느낀 것'의 기록 입니다.
고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소개가 되기엔 정보 부족으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 누군가는 이렇게 영화를 보았구나' 정도의 참고 정도는 될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 400자로 담지 못한 내용 풀어쓰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에세이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신기하게도 교육 방송으로서 냉정하게 봄반을 묘사하자고 거듭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정성이 파고들 틈은 곳곳에 있었습니다. 여하튼 찍는 사람이 저이니 찍힌 화면이 전부 제 시선과 겹쳐져서 '카메라 앵글이나 구도는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 <또 하나의 교육: 이나 초등학교 봄반의 기록> 챕터 중 -
가해자의 가족. 그들은 흰색과 검은색 둘 다 지니고 있는 이중성을 띱니다. 즉 가해자성과 피해자성을 모두 가지고 있지요. 감정이입이 잘 안되는 이런 대상은 텔레비전에서 배제됩니다.
- <희지도 검지도 않은> 챕터 중 -
같이 있는 시간을 만들면 아이들 각자의 취향을 점점 알게 됩니다. 평소에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식으로 밥을 먹는지, 그런 요소 하나하나를 각본에 반영했습니다. 촬영용 카메라가 언제나 거기 있다는 데 익숙해지도록 이때부터 이미 16밀리 카메라를 방에 설치해 두었습니다.
아파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대사가 아닌 액션(행동)을 겹겹이 쌓아 그리고자 했습니다. 연기적 테크닉을 발휘하는 것보다 고개를 조금 숙인 표정으로 보는 사람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편이 좋았습니다.
#연기디렉션 장남 유야가 드라마 연속극에서 대본을 외우는 걸 경험하고는, 말에 감정을 실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보통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것을 배제하기 위해 특히 유야에게는 준비를 시키지 않고 연습 없이 곧바로 촬영했습니다.
- <아무도 모른다> 챕터 중 -
제게는 ‘이것이 홈드라마’라는 기준이 있습니다.
가족이니까 서로 이해할 수 있다거나 가족이니까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가족이니까 들키기 싫다’거나 ‘가족이니까 모른다’ 같은 경우가 실제 생활에서는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둘도 없이 소중하지만 성가시다’ 홈드라마는 이러한 양면을 그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p226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이라는 에세이를 보고 난 이후에 만나는 작품이라 그런지 에세이에서의 고에레다 감독의 시선이나 생각이 겹쳐지는 장면이 몇몇 있었다. 양면성, 그리고 가족은 고 감독의 작품에 꾸준히 적용되는 테마인 것 같다.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다면적인 모습이 단지 '영화속의 캐릭터'가 아닌 실제 존재하는 인물 처럼 느껴지게 한다.
인상적인 장면과 대사들
- 아키가 린에게 "린은 갈색머리네. 염색 안해도 되겠네."
고감독은 관찰이 주특기인 것 같다. 연기자의 특성을 캐릭터로 종종 가져온다. 우리가 현실에서 쓰는 지나가는 말들을 잘 포착하는 것 같다.
- 글쎄요... 뭐라고 불렀을까요?
조사관의 물음에 노부요의 대답..
명확한 유괴이지만, 아이에게는 더 도움이 되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대답으로 자신의 생각이 불투명해진 것 처럼 느껴졌을까? 내 욕심일 수 있었다고 생각했을까? 그 모든 생각을 ...으로 표현한 것 같다.
나는 정말 처음 보는 이 배우를 사랑하기로 했다. '연기'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실례인 거 같다.
- 아빠는 아저씨로 돌아갈게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족은 무엇이다, 라는 정의 따위 머릿 속에서 사라졌다. "너를 아끼는 애틋한 마음"은 내 자신의 상황이 앞선 선택으로 관계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렇게 그는 아저씨로 돌아갔지만 쇼타를 배웅하며 그렇게 버스를 따라 뛰었더랬다. 고감독의 말처럼, 정의할 수 없는 양면성이 가족이 아닐까 한다.
- 그리고 마지막 장면, 쥬리 또는 린...
다시 고감독의 에세이를 발췌하자면,
'카메라 앵글이나 구도는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서툴게 배운 숫자 세는 법을 되내이는 쥬리 또는 린. 어딘가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으로 영화가 끝이 난다.
짠하고 눈에 어른거리는 이 꼬마가 더 보고 싶다. 그 시선을 더 보고 싶다.. 할 때 바로 끊어버린다.
고감독의 의도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그리고 그것이 고감독이 이 대상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과의 거리조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쥬리 또는 린의 시선을 더 주었으면 엔딩은 신파가 되고 '어느 가족'을 그리워하는 린이라는 의미 부여가 되었을 것이다.
이 시선은 “쥬리가 아닌 린의 시선이야” 라고. 짧지만 강렬한 그 컷 때문에 나는 눈물이 났다.